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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프로젝트 : ② 사연자 B 씨의 이야기 (« 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

우리들의 이야기

by 심리 스케쳐 2023. 8. 1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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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연을 시작하기 전

 

이번 글에서는 사연자 B 씨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지난 글에서도 썼지만, 다양한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분들께서 어떻게 힘든 순간을 극복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나의 프로젝트/연구에 참여해 주신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께 총 5가지의 질문들을 드렸었다.

(지난 글 참고 : 심리 프로젝트 : ① 사연자 A 씨의 이야기 («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입니다. ») (tistory.com))

평소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주신 분들의 이야기들만 들을 수 있었는데, 나의 상담실 밖에서도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도움이 필요할 수 있는 그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의가 크다.

이번에는 사연자 B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원활한 이해를 위해 글의 스타일이나 개인정보를 어느 정도 동의하에 수정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

 

 

사연 2 : 사연자 B 씨의 이야기 (« 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

 

1. 짧게나마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면 ?

 

인생 이야기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거 외엔 남들 다 하듯 평범하게 살다가 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딱히 특별한 일도 없었고 교우 관계도, 직장 생활도 원만했고요. 그런 제 인생을 바꾼 건 결혼입니다. 모든 걸 다 줄 수 있을 만큼, 간과 쓸개도 떼어줄 정도로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부인이 이웃집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걸 알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2. 기억에 남는 힘들었던 순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면 ?

 

이혼을 한 당시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웃집 남자와 내 뒤에서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해 정말 화가 났었고요. 배신감도 들었습니다. 그런 분노를 술로 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술을 조금 마셨긴 했지만,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혼 이후 거의 매일 같이 마시게 되었고, 직장에도 자주 지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병가를 내면서 가지 않기를 자주 하다가 결국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집도 잃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시게 되었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계속 퍼마셨죠. 처음에는 소주나 맥주를 마시다가 나중에는 독한 술을 병째로 마시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안 마시면 손이 떨리더군요. 안 마시면 정말 죽는 것 같았어요. 몸도 정말 상했죠. 그래도 술이 들어가야 하니까 마셨습니다. 사실 이 기간은 술 외에 거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 혹시 아직도 극복 중이시라면, 어떻게 이겨내고 계신가요 ?

 

극복했고는 할 수 없고 열심히 치료 중입니다. 가끔 술이 간절할 때가 있긴 한데 술을 안 댄 지 좀 오래되었고요. 이렇게 치료에 임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잘 우시지 않는 분인데 눈물을 흘리시며 애원하시는 모습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들더군요. 직장도 잃고 집도 잃어 사실 어머니와 단둘이 함께 사는데, 치료받는 과정 중에 매일 같이 저를 돌봐주셨어요. 저 또한 더 건강해져서 지친 어머니를 돌보려고 합니다. 어머니를 돌보려면 저도 건강해야 하잖아요.

두 번째 이유는 중독 센터에서 만난 어떤 남성이 저와 비슷한 경우였지만 좀 더 심한 경우였어요. 그때에도 정신이 퍼뜩 들었어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절로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겠다, 변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치료받고 있습니다.

 

4.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으세요 ?

 

음… 여기까지 열심히 잘 버텨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버티자. 너는 최선을 다했다. 전 와이프의 배신에 많이 힘들었지만 그 사람 때문에 너의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

 

5. 당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지금 겪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나요?

 

아까 질문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비슷한 걸 겪으신 분이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술 때문에 울고 웃어도 술에서 벗어나니까 개운해지더라고요. 술 때문에 괴로웠지만 차근차근 저의 길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B 씨의 사연을 접하고…

 

짧은 인터뷰에서도 B 씨의 이야기에서 예전 '알코올 중독의 증상들'*이 많이 나타난다. (*알코올을 의도했던 것보다 많은 양 혹은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셨다는 점 + 알코올에 대한 강한 욕구 + 반복적인 알코올 사용으로 인해 직장에서 주요한 역할 책임 수행에 실패 / 중요한 사회적, 직업적 혹은 여가 활동을 포기하거나 줄임 + 신체적인 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반복적으로 알코올 사용 + 내성(원하는 효과를 위해 알코올 사용량의 뚜렷한 증가 혹은 더 강한 알코올을 찾는 것) + 금단 증세)

이런 증상들은 한편 B 씨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프다.

사실 마약 청정국이 더 이상 아니게 된 대한민국에서도 요즘 마약 중독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 오고 간다. 이렇게 마약, 그리고 알코올과 같은 물질 중독은 특히나 우울 혹은 무력감과 같은 심리적 증세 말고도 신체적인 금단 증세를 수반하므로 치료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약물 치료와 전문적인 상담, 그리고 주변 가까운 이들의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연자 분께서 지금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계시고, 또 술을 안 댄 지 오래라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단 증세까지 보이셨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및 정신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셨다는 것과 ‘나’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계신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다.

 

사연자 B 씨의 이야기에서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혹은 극복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신 부분을 여러 번 읽어봤다. 약물 치료, 상담,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꾸준한 지지와 관심 등 외부의 도움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도, 즉 사연자 분 스스로 찾으신 ‘동기’는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이끌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값진 것임이 분명하다. 어떤 치료에서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 때문에 너의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라고 말씀해 주신 부분에서 나의 가치와 삶을 더 중요시하게 된 사연자 분의 인식의 변화가 느껴진다. 이렇게 어떠한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충격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사연자 분의 이야기에서도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혹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가끔은 인생에서 이렇게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déclic’)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는 답답하고 좌절스러운 상황도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떠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깨달음 혹은 배움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 말고도 중독으로까지 빠지게 된 이유 또한 생각해 봐야 한다.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특히 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독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사연자 님의 경우에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말씀해 주신 이야기에서는 ‘분노를 술로 풀어주셨다’고 해 주신 부분이 눈에 띄었다.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건강하게 해소할지 막막하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연자 분의 이야기에서 ‘상실’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사연자 님이 어리셨을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셨는데, 이에 대해 자세하게 다뤄주지는 않으셨지만 분명 큰 상실로 인해 고생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주체가 되기 전 부모라는 절대적인 존재는 ‘나’의 모든 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세상의 일부인 아버지를 일찍 잃으신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정말 버거웠을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상실에 대해 이미 노출이 되었었고, 이후에도 정말 가슴 깊이 사랑한 다른 대상을 잃으셨다. 사연자 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정도로, 간과 쓸개를 떼어줄 정도로’, 즉 ‘나’ 전체를 내어줄 정도로 사랑했던 또 다른 대상을 상실했을 때 그 대상뿐만 아니라 ‘나’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셨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상실감’이라는 감정은 그 얼마나 ‘우울감’과 관련된, 괴로운 감정인가. 사연자 분께서 얼마나 절망스러우셨을까.

사연자 님께서는 상실의 깊이가 무겁고 무서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을 선택해 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같은 현실을 마주하셔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항상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돌볼 수 있고, 또한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 과정이 힘들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맞는, 긍정적인 현실을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상실을 건강하게 ‘애도’하시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연자 분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단어는 바로 ‘찾다’라는 단어다. ‘찾다’라는 동사는 어떤 것을 ‘잃었다, 상실했다’는 맥락이 있어야 가능한 단어다. 그런데 사연자 님께서 ‘술 때문에 괴로웠지만 차근차근 저의 길을 찾아가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셨다. ‘상실’이 매우 중요했을 것 같은 사연자 분의 이야기에서 스스로 ‘찾다’라는 단어를 표현해 주신 점이 인상 깊었다. 상실의 아픔으로 안타깝게도 사연자 님은 개인적인 일상과 삶, 직장, 그리고 터전을 또다시 새롭게 잃었었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고’ 계시는 것.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상실하지만 다시 찾고 메꾸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금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연자 B씨는 분명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그의 새로운 삶을 멀리서라도 항상 응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레코드판을 소장할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Massive attack'의 'Live With Me' 라는 노래를 함께 올린다. 항상 마음을 울리는 노래이자, 영상이다. 들을 때마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Massive Attack - Liv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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